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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ng Pyo So

News in Seoul National Univ. Alumni association

MIT에서 연구원으로 있은지도 어느덧 5년째가 되었다. 여기 오래있으니 한국에서 경험할수 없는 많은 것들이 생기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3월 31일, 세미나 주제는 “대한민국의 반도체의 태동” 강기동박사님의 세미나였다. 평소 나름의 산업 흐름에 관심이 있고 일정도 토요일 오후라 크게 부담되지 않아서참석하였다. 강연회장에서 뵌 강기동 박사님은 이미 연세가 있으셨다. 그분은 차분히 대한민국의 역사와 그분은 미국에서 개발하셨던 반도체 CMOS양산기술을 어떻게 한국으로 전해주셨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주셨다. 강연 시간은 한시간 가량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 오랜시간의 경험들을 설명하는것은 부족해보였지만 최선을 다해가시며 설명하셨다. 그분은 1960년대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셨는데, 그 때는 반도체라는 개념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벨 연구소에서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강박사님은 반도체에 가능성을 알고 산업화에 이바지 하고자 모토로라에서 일을 하셨고 반도체가 제품으로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집적기술에 대하여 집중연구를 하셨다. 그 결과로 CMOS 기술이 개발되었다. CMOS은 반도체의 집적 공정기술으로 반도체 발견 다음으로 반도체가 실생활에서 응용할수 있도록 생산해내는 기술이다. 그 기술은 메모리산업에 혁신을 몰고 왔다. CMOS는 내가 과학자가 되기 이전부터 들어오던 컴퓨터에서 들어오던 익숙한 단어이기도 했으나 개발자가 한국인이지는 몰랐다. 강박사님이 개발한 CMOS기술은 모토로라를 통해서 TI, fair child, Intel등으로 전파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분야와 반도체의 높은 가능성을 알아본 박사님은 조국에 기술을 전하고자 하셨다. 이제 전쟁을 지나왔고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있었고, 풍족하지 않았지만 어린시절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살아가는곳, 산악회 활동으로 전국토를 누볐던곳, 나와 함께 꿈을 키워나가며 동문수학했던 대학 동기들과 우리를 따라 또 다른 꿈을 기워나가 후배들이 있는 조국을 위하여 이 기술은 반드시 전해야 했다. 조국에 기여하는것은 부친의 유언이고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였다. 회사에서 일을 했기에 누구보다도 경제적인 파급효과와 시한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한국은 근대산업의 불모지였다. 어떤것도 쉽게 진행되진 않았다. 또 하나 강박사님의 손발을 잡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강박사님의 기술이 군사 목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반도체를 너무도쉽게 접할수있지만 당시에는 미사일에 들어가는 고급기술이었고 이미 강박사님은 국방성프로젝트에서도 관심이 집중되었있다. 전해들은 바로는 당시 미사일(minuteman 1)은 들어가는 진공관은 충격에 약했고 업그래된 미사일(minuteman2)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방사능에 아주 취약했다고 한다. 강기동박사님이 개발한 기술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그런 군사적인 공로는 신변보호등을 이유로 강박사님의 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국에 기술을 전하고자 하는 시도는 갈수록 난항이었다. 그래도 포기할수 없었다. 지금 이 시점을 놓치면 한국의 산업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것도 힘들어지고 고되고 힘겨웠던 가난도 지속될것이다. 그렇게 마치 영화속에서 나오는것처럼 한국에 기술이식 과정은 아주 치밀한 계획속에서 진행되었다. 바로 한국으로 갈수가 없으니 미국에서 기술자들을 숙련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술자들은 한국에 보내어 한국에서 스스로 생산할수 있도록 전하고자 하였다. 그런 과정동안 한국에서는 아무런 보수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국에 반도체 산업에 토대가 되었고 회사를 설립하고 생산라인까지 가동하여 미국에도 뒤떨지지 않도록 발현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초기 열정과 땀을 담은회사는 삼성에게 까지 전해졌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당시 또 한명의 대한민국의 기업가인 현대 정주영 회장을 만났다. 남은 힘을 다하여 반도체개발과 관련한 본인이 지식과 경험을 구상을 전하였다. 꼭 해내야한다고..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정주영회장은 그것을 토대로 현대반도체가 만들었고 후에 현대하이닉스와 SK하이닉스로까지 이었졌다. 삼성의 이병철회장 또한 반도체의 가능성으로 높이 알아봤고 이는 동경 구상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전폭적인 투자로 메모리부분등에 막대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렇게 미국에 공부하고 연구한 기술을 국가 발전을 위한 염원으로 한국에 전해졌고, 반도체의 기술이 국제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발전할수 있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 작은 도화선의 불은 지금 한국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되고있는 반도체 및 전자산업으로 이어져서 활활 타오로고 있다. 그 당시 강박사님은 자신의 모든열정과 젊음, 그리고 할수있는 모든 경제적 지원을 다하여 하얗게 태웠다. 때로는 상처도 많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던 순간들도 있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나를 너무도 괴롭혔던 사건들과 때때로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 하긴 했지만 지금 반도체가 이렇게 성장한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하신다. 미국으로 돌아온 강박사님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항에 대비하여 한국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셨고 냉전시대에 고통을 너무 잘아시기에 움추리며 생활을 위해 무전기를 수리하시며 살았다고 하신다. 미국에서 그렇게 계시던 오랜 시간동안 때로는 힘겨울때는 가끔씩 후회와 한탄이 될때도 있었다면서 인간적이고 솔직한 얘기를 해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월은 야속하게도 젊은 시절 멋진 장발을 하시고 건장했던 강박사님을 머리가 빠진 백발의 노인으로 만들었고, 언제나 새로운 영웅만을 찾아 나서던 한국은 그렇게 오래된 영웅을 잊어버렸다. 초대에는 삼성반도체의 사장도 하였던 그분이 과연 한국인 강기동인 아닌 Stave나 James로 태어났다면 무전기 수리공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스티븐잡스나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됬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분은 세미나가 끝나고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으셔서 지금 나와같은 후학을 보며 또렸한 눈빛과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신다. 기술 발전은 국가 발전의 근본이 되고 그 과정에서 좌절은 끊임없이 찾아온다.일을 하다보면 적은 어디에서 나올지 모른다. 가장 가까이 일수도 있고, 혹은 가장신뢰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그렇게 동료가 되기도하고 혹은 나를 탄탄히 지켜주고 법을 잘알고 도와줬던 사람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막을수 없다. 그냥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기술발전)을 꾸준히 하는것이다. 어떤상황에서 멈추지말고 끊임 없이 도전하고 일어나서 나아가라고.. 기술개발과 사업으로 오랜 경륜에서 나온 얘기이다. 그런 갈등에 쓰러지고 좌절하는것이 인생을 허비하는 방법인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 국가를 위해 달라 하셨다. 교수도 아니고, 아직은 가야할길이 머나먼 나에게 본인의 혼심을 다하여 설파해주셨다. 너무도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렇게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숨겨진 거장이 이미 나이가 85세가 되어서 그 동안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지금 핸드폰을 쓰고, 노트북을 사용하고 모든 기술적인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오늘의 나는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대학민국의 3차 산업의 토대를 닦았던 역사적인 거장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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